- 참여작가_강홍구
- 기술미학포럼/data
- 2009. 2. 6. 16:57
- Posted by 별소년
강홍구 Kang, Hong Goo (1956-)
1976 목포교육대학 졸업
1988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1990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 졸업
개인전
2006 <풍경과 놀다> 로댕갤러리
2004 <오쇠리풍경> 갤러리 숲
2003 <드라마세트> 대안공간 풀(서울)
2002 요스카 뷰잉룸(토쿄)
1999 금호 미술관(서울)
갤러리 그림시(수원)
1992 갤러리 사각(서울)
주요 그룹전
2008 <Metropolis in Sub-Way-World> 덕원갤러리
2007 <적절한 풍경> 스페이스 바바
2002 4회 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3, 집행유예(5.18자유공원)
제1회 부산 비엔날레, 현대미술전,(부산시립미술관)
미디어 시티 비엔날레(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 아트,대전,뉴욕,특수효과전(대전시립미술관)
11&11, 한일전(성곡미술관,요스카 뷰잉룸.토오쿄오)
개전,(사비나 갤러리)
플러스(아티누스 갤러리)
2003 영화백년 기념전(세종문화회관)
물 위를 걷는 사람들(서울시립미술관)
공원, 쉼표, 사람들(마로니에 미술관)
저 서
2001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황금가지
2002 미술관 밖의 미술 이야기1·2 아트북스
2006년디카를 들고 어슬렁 마로니에북스
작품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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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홍구는 1956년 전라남도 신안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광주 비엔날레 등 다수의 전시와 개인전을 가졌고,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 이야기」등 미술 관련 대중서적을 집필 한 바 있다. 몇 년간의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정리하고 화가를 꿈꾸며 미술대학에 진학한 강홍구는 처음에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곧 광고나 영화 스틸 이미지를 활용한 합성 사진으로 자신만의 작업 방향을 찾기 시작하였다. 스스로를 천재 작가인 A급이 아니라 한급 떨어지는 B급 작가로 자처하면서 대중매체에서 빌어온 이미지를 가지고 초현실적인 합성 사진을 만들었다. 손으로 그리는 수공적인 회화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작가는 기계로 인화지를 출력해서 벽에 꽂는 전시방식을 택함으로써 컴퓨터 사진의 가볍고 일회적인 특성을 강조해왔다.
초고속 근대화를 이룬 한국사회의 특수한 현실을 직접 겪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합쳐서 이 사진들은 작가의 첫 사진전 제목처럼 ‘위치, 속물, 가짜’를 탐구하는 연작을 이루었다. 제도와 현실의 무게에 눌려서 고민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작가의 이번 전시는 90년대를 지나 계속되는 강홍구의 풍경연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그린벨트」나 「드라마 세트」같은 인공적인 환경에서부터, 재건축을 앞두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강북의 폐허까지 작가가 디지털 카메라로 ‘만들어 낸’ 다양한 사진을 볼 수 있다. 작가 작업실 주변의 재건축 철거 가구에서 주은 게임 캐릭터 인형으로 연출한 폐허의 장면을 천하를 들썩이게 하는 수련자의 무공으로 비약시키는 강홍구의 사진은 세상의 변화나 제도의 견고함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다운 여정을 계속해 온 작가의 내공을 보여 준다.
10여 년에 걸친 강홍구의 디지털 사진의 탐구 결과인 이번 전시는 B급 작가가 결국은 A급이 된다는 속설의 또 다른 예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B급 작가가 찍은 디지털 풍경을 보여 주는 이번 전시가 기존의 미술에 대한 저항이 미술사와 제도 안에 통합되는 예정된 수순이라기보다 성실한 B급 작가가 지나쳐온 풍경을 가감없이 보여 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로댕갤러리
■ 갤러리 숲 2004 <오쇠리 풍경> 서문
오쇠리에 관한 시선 혹은 무력감
강홍구의 최근 작업의 대상은 오쇠리라는 특정한 공간이다. 오쇠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이다. 그러나 이 중성적 진술에는 오쇠리가 김포공항 바로 옆, 겨우 담 하나를 두고 바싹 붙어 있다는 사실이 빠져 있다. 국가 권력과 시스템이 공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분할한 공간을 뜻하는 주소는 사실을 담고 있지만 진실은 없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은 기묘하게 존 버거 말처럼 '아무리 가짜 모습일지라도 거기에 진정성'을 부여하지만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한대로 오쇠리는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에 있다. 김포공항 바로 옆에 붙어 있기 때문에 항공기 소음이 대단한 곳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김포공항이 생긴 이래 그 끔찍한 소음 아래서 마을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고, 그에 따른 항의와 대책의 요구가 계속되었다. 그 결과1987년 4월 10일 오쇠리는 항공기 소음피해 1종 지역으로 결정되었고, 서울지방항공청과 부천시가 협약하여 마을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공원이나 골프장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곳이 골프장이 될지, 공원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곳이 될지는 아직 확정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가옥주들은 대개 원만한 협의가 되어 이주가 거의 이루어졌으나 사정이 어려운 세입자들은 아직도 거주하고 있다. 물론 거주자의 수는 점점 줄어가고 있으나 이주 대책은 아직도 완전하게 결정된 상태는 아니다.
작가가 처음 오쇠리 사진을 찍은 것은 99년이었다고 한다.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우연 때문이었다. 그는 순간적인 폭발력은 낮지만 지연성이 대단히 강한 무슨 특수 저강도 폭탄을 맞은 것처럼 페허가 되어가고 있는 마을이 주는 놀라운 인상 때문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동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고 말한다. 다만 한가지, 한 마을이 폐허가 되가는 일이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일종의 상징이자 지표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선 대상과의 거리와 화각이다. 멀리 떨어진 대상들은 일종의 의사 파노라마적 구조 속에서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의사 파노라마 구조란 강홍구의 사진들이 외견상 파노라마적 구조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균열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 균열은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몇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인 자국이면서 동시에 매끈한 풍경 사진이 되는 것을 막는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금들은 풍경이 하나의 통일된 광경이 아니라 강제로 접합되었다는 것을 노출시킨다. 때문에 그의 사진들은 파노라마적 제스춰를 취한 상태가 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파노라마는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영국 화가 로버트 버커가 발명한 장치이다. 커다란 원호 모양의 실내에 정밀한 원근법에 의해 풍경을 그려 붙이고 원의 중심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의 구경거리로서의 파노라마는 1793년 처음 선을 보였고 그것이 발전된 형태가 디오라마이며 아직도 박물관, 전시관에서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파노라마는 근대적 시각의 초창기의 발명품으로 모든 풍경들의 깊이를 없애고, 균질화하며 구경거리이자 관리 대상 정도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래서 파노라마 사진은 그럴듯한 관광용 선전 사진이나 대상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강홍구의 사진은 이미 지적했듯이 지극히 의사적이며 그 의사적 파노라마는 시선의 내적 갈등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오쇠리라는 피해와 갈등의 현장의 외견적 인상이 주는 하나의 구경거리로서의 특징과 국외자로서 바라보고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다는 데서 오는 심리적인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그 갈등은 일종의 변명이자 도주이다. 즉 모든 사진, 혹은 예술가들은 참여자라기 보다는 구경꾼이자, 기록자라는 동시에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 고백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까 하는 문제는 그 사진을 바라보는 관객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관객 역시 그 사진을 하나의 작품, 정확히 말해서 구경거리로 보는 순간 일종의 공모자가 되기 때문이다.
강홍구의 작품은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가진 것 같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것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풍경의 화각은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쓰이는 표준 렌즈의 화각을 벗어나 광각에 가까이 가있다. 광각은 인간의 눈으로는 가질 수 없는 시야이다. 그것은 순전한 카메라만의 시각이며 대상들의 실재감과 거리감을 박탈하고 공간을 뒤틀어 왜곡시킨다. 물론 표준렌즈의 시각이 인간의 시야와 유사하다는 것 역시 카메라의 시야이지만 광각 렌즈로 바라본 풍경은 대상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공간의 구조와 구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구경거리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다큐, 기록적 사진들은 왜곡이 심한 화각들을 피한다.
강홍구의 작품에서 광각은 독특한 역할을 한다. 그가 말하는 구경군의 시각은 그것을 통해 강조되면서 동시에 우리가 가진 일상적인 구경꾼으로서의 경험을 끌어낸다. 우리가 가진 시각적 욕망은 대단히 강렬하다. 자신의 안전만 보장 된다면 무엇이나 기꺼이 구경하려 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신상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그 욕망을 충족 시키려 든다. 싸움, 전쟁, 불, 시위 등 폭력적인 것들일 수록 더 구미를 당기는 구경거리가 되며 그것은 우리의 경험적 리얼리즘을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즉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어서 세부는 보이지 않더라도 전체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는 구경을 위한 좋은 자리가 되며, 거기서 얻어진 시야는 일상적 경험 속에 자리 잡는다. 강홍구의 사진이 의사 파노라마적 시각과 극단적이지 않은 광각을 결합함으로써 얻는 것은 바로 그 경험적 리얼리즘이다.
물론 그 경험적 리얼리즘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것은 우선 대상에 대한 애매한 태도와 어정쩡한 거리로 나타난다. 오쇠리라는 특정한 공간이 가진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갈등, 고통의 구조를 드러내는데는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강홍구의 작품이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지만 사진 혹은 우리 시대의 모든 재현 매체들이 가지는 본질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근래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많지만 그 분위기는 대단히 공허하다. 기이하게도 다큐멘터리적 목적으로 찍은 사진들까지도 전시장에 모아 놓으면 유사한 대상, 동일한 프레임과 형식적 태도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공허해진다. 그것은 최근에 국내에 전시된 베허 부부의 사진에서도 확인되며 몇몇 다큐멘터리 사진전에서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이는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프린트가 보여주는 냉담한, 무감감과 지극히 유사하다. 이 유사성이 핼 포스터가 어디선가 말한바 있는 일종의 외상적 증후군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사진가들 조차도 사진의 재현성에 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마가렛 버크 화이트처럽 '중요한 것은 철저한 진실이며,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그 진실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사진은 무엇인가를 재현하지만 재현 자체에 대한 믿음이 없으며 그에 대해 다루지도 않는다. 물론 대중 매체와 관습적인 권력 속에서 사진은 사실에 대한 증거로 그 인증력을 갖지만 그것은 문자 그대로 관습적이다. 심지어 최근에 충격을 준 미군의 이라크 포로를 학대한 사진조차도 사실의 단편을 보여줄 뿐 배후의 진실을 결코 재현하지는 못한다. 어쩌면 디지털 사진은 바로 그 재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사진의 세계에 결정타를 가하는 마지막 일격일 수도 있다. 강홍구가 이용한 디지털 사진도 프린트된 상태, 의사 파노라마적 성격, 어정쩡한 광각적 시야 등에 의해 뭔가를 재현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사진이 된다. 재현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희망을 뒤흔들고, 표면에 금을 내서 이미지들은 그저 인화지 위에서 떨며 머물러 있을 뿐이다.
오쇠리는 단순히 비행기 소음에 의해 피해를 본 한 마을로 그치지 않는다. 얼마전에 미군 사격장 폐쇄를 결정한 매향리와 수많은 수몰지구 마을들과, 신도시 지역 더 나아가면 온 나라 전체의 동네들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강홍구의 작업들은 그에 대한 일종의 환유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환유로서의 사진은 오쇠리라는 동네를 통해 우리나라 전체를 들여다보는 통로 역할을 한다. 전시된 사진뿐만 아니라 전시되지 않은 많은 사진 속에 오쇠리는 다양한 이미지로 존재한다. 문닫은 지 오래된 퇴락한 이발소, 세입자들이 투쟁하던 건물과 거기에 걸린 물 빠진 태극기, 장다리꽃이 노랗게 핀 밭, 불탄 집들, 집이 사라진 자리에 쌓인 쓰레기와 멀쩡하게 자라 잎이 푸른 나무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오쇠리에 수십여 차례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났고 2003년에는 열살도 안된 어린 남매가 불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역시 존 버거의 말처럼 '사진은 거짓말을 못하지만 마찬가지로 진실도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강홍구의 사진을 비롯한 근래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여러 특성들을 들여다보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강홍구를 비롯한 요즘의 사진들이 보이는 공허함은 무엇인가를 재현하면서도 결국은 재현 자체를 다루지는 못하고 있으며, 진실을 말하지도 영향력을 갖지도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력감은 일반화된 경향이 된다. 그래서 사진은 재현의 성격을 모두 포함하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노골적으로 무력감을 드러내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가능성조차 배제해 버린다. 재현은 포기된 것이 아니라 재현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강홍구의 사진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모든 이미지들 볼 때 우리는 그 이미지를 생산하고 동시에 침묵시키는 배후의 아이러니 보아야 할 것이다. ■ 갤러리 숲
드라마 세트 / 파편 / 위장
거의 진짜에 가까운 것에 대한 광적인 갈망은 언제나 기억의 진공 상태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으로나 나타날 뿐이다. 절대 모조품은 실체가 없는 현실에 대한 불행한 자의식의 산물이다._ 움베르토 에코, 마법의 성
1. 어느 방송국 휴양 시설 안에 있는 드라마 세트를 본 것은 우연이었다. 이제 더 이상 쓰지 않는, 용도가 폐기된 드라마 세트는 기이했다. 내려 쬐는 여름 햇빛 아래 아무도 없는 가짜 거리가 있었다. 일제 시대 부터 육, 칠십년 대 까지, 공간적으로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시간과 공간을 건너 뛰어 한 곳에 모인 새로운 세계였다. 건물벽에는 컴퓨터로 프린트 된 퇴색한 광고지들이 붙어있었고, 바람이 불면 식당문에 내걸린 일본식 등과 천에 쓴 메뉴들이 흔들렸다. 내가 본 어떤 미술 작품보다도 쇼킹했다. 아니 어처구니없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드라마와 영화를 위한 세트들은 그 자체로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를 통해 영상화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존재한다. 즉 이차원적 영상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재현된, 혹은 가짜 삼차원인 것이다. 때문에 용도가 사라진 세트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지 않는 한 버려진다. 그 버려진 세트의 폐허는 현실의 폐허보다 더 폐허 같다. 아니 사실 세트는 버려진 다음에 현실이 되기 시작한다. 대충 만들어진 건물의 일부가 허물어지고 가로수 잎이 푸르러지고 창문에 먼지가 쌓이면서 영상화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즉 기호가 사물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트가 가진 일회용 성격 때문에 공허함과 가짜성은 더 증폭된다. 그 때문에 기이함이 더했던 것일까?
2. 저 유명한 야인시대의 드라마 세트를 가본 것은 최근의 일이다. 부천 상동지구, 한편에서는 농지를 대지로 만들어 끔찍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고, 다른 한편은 연립주택과 교회와 상가 건물을 짓고 있는 사이에 세트장이 있었다. 절묘한 공간 배치였다. 근처의 모든 것이 거대한 세트라는 것을 너무 잘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세트장 안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촬영이 진행중이어서 전에 본 드라마 세트와는 달랐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면만 그려진 광화문과 내걸린 태극기와 일제 시대의 충무로, 명동, 종로를 삼천원을 지불하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무튼 감흥은 전만 못했다. 애초부터 관광지로 생각하고 만들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좋다. 가짜라는 것, 우리 삶 전체가 세트 같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니까.
3. 내가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늘 포착했으면 하는 순간은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어떤 때이다. 분명히 현실인데 도무지 현실 같지 않은 순간들.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에스에프 영화 같은 분위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순간들은 지극히 평범한 풍경들에 있다. 놀이 공원, 식당, 장례식장, 해수욕장, 술집, 그린벨트, 드라마 세트 등등. 나는 지극히 무의미한 가짜 사진들을 만들고 싶었다. 미술 작품을 둘러싼 제도와 말과 이론들이 너무 짜증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사진들이 무의미하고, 공허하고, 황당무계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사진을 찍고, 사진에 약간의 조작을 가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 사진들 속에서 자꾸 죽음을 읽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죽음은 시간을 정지시키고 그 대상은 죽음의 상태에 있다는 사진 담론 속의 죽음은 아니었다. 현실 자체의 죽음, 그러나 죽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느껴지는 무엇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닭을 잡는 대신 죽은 닭을, 물고기를 잡는 대신 죽은 물고기를 산다. 그 죽은 닭과 물고기들은 머리와 내장이 달아나고 마치 죽음이 아닌 것처럼, 시체가 아닌 것처럼 비닐에 싸여 포장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다. 죽음이 아니라 물건과 상품으로 취급할 뿐이다. 죽음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감각도 없다. 삶 자체도 비닐 랩에 싸인지 오래인 것이다. 그 비닐 랩은 매끄럽고 투명하지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는 사물 뿐만 아니라 풍경과 인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 된다. 그린 벨트와 골목과 길과 거리와 세트장과 그 모든 곳에도. 이러한 죽음, 공허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열심히 생산해낸 것인데 사진 어디에나 들어 있었다. 의도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내 작품들은 결국 죽음에 대한, 시체선호증에 대한 사진이 되고 말았다. 혹은 크라카우어의 말처럼 의도하지 않았어도 피할 도리 없이 사진에 담기게 되는 파편화된 세계의 필연적인 측면일 것이다.
4. 크라카우어는 자신의 영화 이론의 전개를 위해 사진에 관해 말한다. 그는 우선 사진의 특성을 연출되지 않는 현실unstaged reality, 우연성the fortutious, 무한성endelessness, 비결정성indetermines이라고 주장한다. 비연출성이란 사진에 필연적으로 담기게 되는 찍는 사람의 의도와 상관 없는 현실의 파편 때문에 발생하고, 그 우연성이 사진의 기술적 원근법적 질서에 금을 가게하며, 거기서 얻어지는 필연적 종합없는 파편성 때문에 무한하며,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해서 사진은 결국 불명료한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비결정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크라카우어의 관점에서 사진은 이상의 특성 때문에 현실의 총체적인 어떤 것을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더 이상 통일성, 총체성이 불가능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진은 현실의 파편성을 통해, 그러한 파편이 새롭게 짜여질 수 있는 전망을 통해, 진정한 변혁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크라카우어는 주장한다. 어차피 현실은 늘 파편, 폐허의 모습으로만 주어지며 그것을 가장 정확하게 담는 매체가 사진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파편 밖에 볼 수 없는 세계에서 그 파편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사진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크라카우어의 주장은 옳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잡음noise으로 가득찬 정보인 사진은 세계의 파편만을 담을 뿐이며 그 파편들을 아무리 의도적으로 배열하고 정리해도 결국은 우연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크라카우어 자신이 말하듯이 아무리 뒤로 물러서도, 어떤 위치에서도 사진은 세계 전체를 담을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바르트나 크라카우어가 예술 사진 이외의 사진들이 사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5. 디지털 사진은 전통적인 사진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더 자본주의적이고, 더 기계적이며, 동시에 더 파편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사진적인가? 아니면 컴퓨터로 조작되고 레이저 프린터로 출력 된다는 점 때문에 기술적 측면과 의미구성체적 측면에서 더 비사진적인가? 제임슨에 따르자면 예술작품에는 의미해석에 대해 이질적인 것으로 존속하는 기술적 요소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적 요소를 지속적으로 의미 안으로 통합시키려는 미학적 해석의 요소가 있다. 기술적 요소와 미학적 요소는 그 자체가 일정한 역사적 시기의 규정성을 동시적으로 드러내는 측면들이다. 그리고 사진의 경우에는 기계적 이미지 복제라는 기술적 요소와 일관된 의미구성체라는 해석적 요소가 공존한다. 디지털은 기술적 측면에서 완벽한 복제를 실현 시켰다는 점과 그 복제가 사진의 파편성과 우연성을 교활하게 가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작가의 주관성과 대상에 대한 의미 부여를 더욱더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주었다. 이것은 사진의 아우라, 인증력, 우연성 등을 붕괴시키면서 동시에 강화했음을 의미한다. 이 패러독스는 의미구성체로서의 사진에도 적용된다. 간단한 조작을 통해 사진은 그 의미가 강화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디지털 사진도 여전히 파편이라는 것이다.
6. 나는 원래 사진의 이런 측면들, 특성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진은 그저 이미지일 뿐이어서 내가 본 세계를 가장 그럴 듯하게 복제하고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의문은 그냥 찾아왔다.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전시장에 전시되는 사진들은 저널리즘 사진, 개인적 기록과 기억으로서의 사진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뒤져보니 언젠가 쓴 메모가 나온다. - 세계에 대한 개인적인 시선이 무의미해진 지금 미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더욱 더 개인적인 되거나(그것이 가능하다면) 개인적인 시각을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인 영상적 시각과 최대한 충돌 시키는(이 역시 가능하다면) 길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 개인적 시선의 의도적인 선택은 미술사와 싸우는 길이다. 그 싸움은 독창성, 차이의 획득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고정된 의미들을 깨부수고 재건축 해야하는 싸움이다. 돈키호테적인 이 싸움의 배경에는 아직도 미술의 신화와 압력이 스모그 보다 짙게 끼어었기 때문에 그 싸움은 변질되거나 목표가 흐려져 버린다. 하지만 그 신화와 압력은 미술을 둘러 싼 광휘이기도 한데 그 광휘는 물론 함정이다. 빛나는 함정은 도처에 널려 있어서 빠지면 나올 수가 없다. 나와도 눈이 멀어버린다. / 영상 매체의 힘은 개인적 시선을 중성화 시키고 탈개인화 시키며 사회에 공개되었을 때 개인적 의미를 거의 제거해 버린다. 개인은 사라지고-카메라와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 먹힌다- 오양의 비디오처럼 형식적으로는 블랙 마켓이지만 사실상 공식적인 시장에 공개될 때 철저하게 사회와 제도에 의해 씹힌다. 미술은 이 두시선 사이의 틈새를 아슬아슬하게 벌려놓자는 시도인데 그런 쐐기가 정말 가능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개인적 시각이란 제한된 영역에서 겨우 허용되는 것이고, 더구나 그 시선은 미술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내부에서 지르는 비명에 가깝다. 이제 미술, 혹은 사진 따위를 통한 개인적 시선이란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것처럼 보이는 미술 시스템의 눈치와 보다 결정적으로는 대중매체와 그것을 지배하는 거대한 시스템의 눈치를 보면서 겨우 생존하고 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전통적 의미의 미술 시스템이 아니라 거대 시스템이다. 즉 싸구려 엔터테이너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아니면 대중 매체의 조명을 잘 받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더 나쁜 것은 개인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때문에 고독한 예술가 따위의 수사는 상품화 외에는 쓸모가 없는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
7. 그렇다면 개인적 시선이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시대에 미술, 혹은 사진을 붙들고 있는 것은 무슨 의미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솔직하게 말해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굉장한 예술적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일을 왜하는 것일까? 아도르노의 말처럼 그 무용성, 무용한 것이 생산되지 않는 시대에 무용함으로써 역설적 유용함을 증명하기 위해서일까? 그렇다고 답하면 멋있어 보이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존재증명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삶 자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이런 대답은 사실 자신의 비참함과 무력함을 숨기기 위한, 또는 변명하기 위한 위장이다. 그러므로 사진 혹은 미술은 내 변명이자 위장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위장 이외에 다른 것을 솔직히 말해 믿지 못하겠다.
8. 결국 내 사진은 파편화된 세계를 파편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위장이다. 이것이 과연 크라카우어가 말한 것처럼 그럴듯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의미라고 하니까 오래전에 읽은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이 생각난다. 예술이 가치가 있는 것은 세상의 무의미와 싸우기 때문이라는. 돌이켜 보면 그 말은 아직도 전통적인 예술의 힘을 믿는다는 뜻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로맨틱한 언사에 속을 만큼 젊지도 않고, 도저히 그런 말에 동의할 수도 없다. 아마도 무의미한 세계는 무의미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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