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강홍구_디지털 푼크툼의 순간에도 아픔이 존재할까


제 2회 기술미학포럼_작가 강홍구

본 문서는 2009년 2월 19일 기술 미학 연구회 주관으로 문지문화원 사이Saii에서 진행되었던 "제 2회 기술미학포럼: 디지털 푼크툼의 순간, 그리고 진정성"에서 유원준씨가 진행한 작가 김선회에 대한 발제 내용입니다.



디지털 푼크툼의 순간에도 아픔이 존재할까
강홍구 작가의 <드라마 세트> 시리즈, <오쇠리 풍경>시리즈 를 중심으로

포이에르바하 Ludwig Feuerbach는 19세기 중반, 당시의 사회의 모습에 관해 “사물보다 형상을, 원본보다 복제를, 현실보다 표상을, 본질보다 가상을 선호”한다고 언급하며 무한한 권위를 지닌 이미지의 시대를 예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예고는 한 세기를 넘어 디지털 이미지로 점철된 현재의 상황에 이르러 더욱 유효해 진 듯 보인다. 왜냐하면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그 근본적 체질 자체가 가상적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아날로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진이 현실의 순간을 포착하여 현재화하는 것이었다면, 그리고 그것의 (예술적) 가치가 실제적 상황과 사진가의 기다림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재 디지털 사진의 경우 현실보다 표상을, 본질보다 가상을 선호하는 (포이에르바하의 언급과 유사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가상적 흐름은 결국 사진이 지닌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분명히 과거의 사진은 현실의 단편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디지털 사진은 어떠한가? 한 장의 디지털 사진이 우리의 현실을 대변할 수 있는가?

작가 강홍구의 작업은 이러한 측면에서 디지털 사진이 지닌 현실과의 관계를 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작업은 과거 아날로그 사진과 현재의 디지털 사진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실과의 지시적 관계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들이 현재의 디지털 사진의 가상적 기표의 허구성과 진실성에 관하여 일련의 성찰의 과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그의 작업 중, <드라마 세트> 연작 (2003)과 <오쇠리 풍경> 연작 (2004)을 중심으로 그의 사진에서 나타나는 현실 및 가상적 지표들에 관해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드라마세트> 연작을 살펴보자. 작가는 드라마 혹은 영화를 위해 존재한 드라마세트의 허구성이 그 용도가 폐기된 순간부터 현실화(실체화)되는 순간을 포착하여 기호가 사물화되는 순간을 가시화한다. 그리고 드라마세트가 지닌 일회성에 의해 공허함과 가상성은 증폭된다고 설명한다. 그의 이러한 설명은 충분히 납득할 만 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비는 그가 사진으로 그러한 순간을 포착하면서부터 새로운 구도 속으로 ‘현실 – 이미지 – 가상’의 관계를 배치하여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사진으로 옮겨진 드라마세트는 그 인덱스가 가상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가상성을 잃어버리고, 상징화된 지표로서 이해되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세트’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이미지 속 배경의 출처를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작품 자체로서 인덱스의 허구성을 의심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아니 의심한다 하더라도, 작가가 포착한 가상의 그것은 실제의 그것과 중첩되어 관객들에게 인식된다) 여기에서 주목할 지점은 그가 선택한 오브제, 즉 드라마세트라는 일종의 현실 속 가상환경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공허함과 가상성이 다시 이미지 속으로 숨어버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감상자들은 이러한 사진 속 허구적인 배경을 보며 과거의 실제적인 역사적 순간을 떠올리게 되는 일종의 가상적 푼크툼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디지털 원본을 인덱스로 지닌 디지털 사진의 경우와 유사하다. 강홍구의 <드라마 세트>가 프린트 과정을 제외하고서 아날로그 적으로 이루어졌다 할 지라도,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침으로 인해 이미 디지털 사진의 특성들이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특징들은 후속 작업인 <오쇠리 풍경> 시리즈에서 조금 변환되어 나타난다. 위의 <드라마세트> 연작들이 지시대상 자체가 허구적인 것이었다면, <오쇠리 풍경>은 제목에서 명시하듯, 실재하는 행정 구역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다. 다만, 작가는 비행기 소음에 의해 이주 지역으로 결정 된 ‘오쇠리’의 현실을 파편화된 풍경 사진들의 파노라마적 이어 붙이기와 과장된 앵글로서 포착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는 장면의 작품을 살펴보자. 항공기가 동시에 하늘에 배치되어 있는 장면은 현실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장면들이지만, 그러한 장면은 오쇠리의 왜곡된 현실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 장면에서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는 현실에서의 지시 이미지이지만, 그러한 이미지가 중첩되어 나타나 가상적 순간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감상자는 그러한 가상적 순간들을 지표가 지닌 가상적 측면이 아닌, 가상이 투영된 현실로서 이해하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은 데리다의 언급처럼, 감상자들이 그것이 의도된 코드에 의한 연출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귀속과정’을 거쳐, 필연적으로 그 지시대상을 연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보자. 문제의 핵심이 디지털 사진이 가능케 한 이미지의 ‘현실 조작 가능성’ 및 그 ‘진실성’의 여부에 있다면, 이러한 문제 제기에 디지털 사진은 나름의 해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즉, 강홍구의 <드라마세트>는 가상적 현실의 지표가 감상자들에게 그것이 지시하는 현실이 아닌 가상적 현실로서 이해되는 측면을 드러내고 있고, <오쇠리 풍경>에서는 현실적 가상의 지표가 그것이 의미하는 가상이 아닌 현실적 측면으로 인식되는 과정들이 나타남으로서 디지털 사진이 획득할 수 있는 진실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만약 과거 사진에서 드러나는 푼크툼의 순간이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체험적 인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강홍구의 작업들 또한 가상적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순간을 발생시키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다만, 흥미로운 지점은 현실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디지털 사진이 오히려 현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가상의 순간들은 감상자들에게 순간의 진실성을 판단하기 위한 근거로서 현실을 더욱 반추하게 만든다. 따라서 사진 이미지는 디지털이라는 유전 인자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을 추종한다. 문제는 우리의 현실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 유원준 (미디어아트채널 앨리스온 편집장)